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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한 소고(小考)

설날이나 추석과 같은 명절 연휴는 그 날짜 수에 걸맞는 긴 호흡의 생각을 이어갈 수 있는 매우 드물고 소중한 기회이다. 게다가 미혼인 나는 명절에 챙겨야 할 가사(家事) 또한 많지 않은 덕분에 그 소중한 기회를 톡톡히 누릴 수 있어 언제나 만족스럽다. 이번 연휴에는 아래 소개할 두 편의 작품 덕분에 특별히 의미깊은 생각들을 이어나갈 수 있었던 지라, 그 기억을 짧은 글로 남기고자 한다.

첫번째 생각 -<숨결이 바람될 때(When Breath Become Air)>, 폴 칼라니티(Paul Kalanithi) 지음

긴 호흡으로 곱씹어야 할 생각의 단초를 끄집어 내는 데 있어 가장 좋은 수단은 역시나 ‘책’이다.  이번 연휴에 어머니를 모시고 홋카이도로 여행을 떠나면서, 나는 긴 여유 속에 읽으려고 책장에 꽂아 두었던 <숨결이 바람될 때(When Breath Become Air)> 를 보스턴백 한 켠에 잊지 않고 챙겨 넣었다. 여행이 꼼꼼하고 알차게 준비되었을 때의 만족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지만, 여정에 어울리는 책 한 권은 그 만족감에 있어 화룡점정이라 할 수 있다.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깃털 하나가 그려진 단촐한 이 책을 마주한 느낌이 바로 그러하였다.

나는 부산발 삿포로행 비행기 안, 홋카이도의 JR 기차, 그리고 오타루와 비에이의 료칸에서 이 책의 한 문장 한 문장을 눈으로 즈려 밟았다. 폴 칼라니티(Paul Kalanithi) 라는 전도유망한 신경외과의가 불과 30대의 나이에 암에 걸려 투병하면서도 담담하게 혹은 치열하게 죽음을 마주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아름다운 문장으로 써 내려 간 이 책의 페이지를 나는 단 한 장도 허투루 넘겨버릴 수 없었다. 보편적인 인류애, 가족에 대한 헌신, 환자에 대한 사명감,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까지, 인간이 인간에 대해 가질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사랑을 저자에게서 찾아볼 수 있었다. ‘내 영혼의 대장간에서 아직 창조되지 않은 인류의 양심을 벼리고 싶다’ 던 젊은 날의 저자는 ‘지금에 와서 내 영혼을 들여다 보니, 연장은 너무 약하고 불은 너무 뭉근해서 인류의 양심은 커녕 내 양심조차 벼리지 못했다’며 죽음 앞의 숙명적인 패배를 담담히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죽음 앞에서 저자는 어쩌면 인간으로서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품위있고 의연한 태도를 견지함으로써 남은 이들의 삶을 더욱 찬란하게 비추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여 저자의 인격, 그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나같은 평범한 사람조차도 결국은 죽음 앞에 패배로 끝맺을 것이 명백한 삶의 순간순간에 두려움 없이 임할 수 있는 용기를 잠시나마 품게 만드는 것이다.

두번째 생각 – <나, 다니엘 블레이크(I, Daniel Blake)>, 켄 로치(Ken loach) 감독

연휴를 이틀 남기고 서울로 돌아와 렌즈에 담긴 어머니와의 추억을 정리하고 나서, 존경해 마지않는 켄 로치(Ken loach) 감독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I, Daniel Blake)>를 감상했다. 2016년 깐느 황금종려상에 빛나는 이 명작에서 나는 켄 감독의 전작 <앤젤스 쉐어(The Angels’ Share)> 에서 웃으며 눈시울을 붉혔던 우화적 위트를 기대하였지만, 지난 4년간 조금도 나아지지 않은 세상에 분노한 감독은 위트를 걷어내고 더욱 명징한 목소리로 부조리를 비판하고 있었다.

일터에서나 가정에서나, 시민으로서의 책무를 다하며 묵묵하고 성실하게 살아온 다니엘은 심장발작으로 쓰러진 후, 당분간 일을 하지 말라는 의사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얼토당토 않은 행정처리로 인해 질병수당 지급대상에서 제외된다. 이의제기조차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다니엘은 하는 수 없이 구직수당이라도 받기 위해 시늉에 불과한 구직활동을 계속하게 되지만, 정부의 허울좋은 의무조항들로 인해 다니엘의 마지막 남은 자존감마저 깊은 상처를 받게 된다. 스스로도 곤궁해 처한 다니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보다 더 큰 어려움에 처한 케이티와 그의 두 아이들을 마치 친가족처럼 돌본다. 다니엘의 입장에서 이러한 행위는 다름 아닌 ‘시민의로서의 책무’를 다하는 것이었다. 가난 때문에 눈물 흘리는 케이티에게 ‘너의 잘못이 아니란다.’ 라고 보듬는 다니엘의 따뜻한 말 한 마디는 정부의 사회보장제도에는 결여된, 이웃에 대한 존중과 배려로 가득찬 것이었다. 다니엘은 이처럼 힘든 상황에서도 책무를 다하고 자존감을 지키려 애썼지만 그의 심장은 결국 그의 몸을 지켜주지 못하고 만다.

한 편은 에세이고, 한 편은 영화이지만 <숨결이 바람될 때>와 <나, 다니엘 블레이크> 는 죽음에 대한 시선을 묘하게 교차시키며 나로 하여금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해 주었다. 한 개인이 죽음에 맞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어디까지 고양시킬 수 있는지, 반대로 한 사회가 죽음에 맞선 인간의 존엄을 어디까지 추락시킬 수 있는지, 그 대척점을 잇기가 무척이나 힘겨웠다. 다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결국 죽음 앞에 패배한다는 사실이다. 전쟁에서의 패배를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나면 전투에 임하여서는 ‘생즉사 사즉생(生則死 死則生)’ 의 용기를 가질 만 하다. 그처럼 담담히 나아가다보면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삶이란 애초부터 존재하는 않는 것임을 깨닫게 되리라. 다만, 밤하늘의 별들과 같은 수많은 삶들이 부조리한 사회 속에서 그 빛을 잃어야만 하는 참담한 상황은 절대 없었으면 좋겠다. 다니엘의 삶은 폴의 그것보다 결코 가볍지 않았다. 폴도 <나, 다니엘 블레이크> 를 보았다면 아마 나와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