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과 모난 돌의 레토릭

2008년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예견한 바 있는 금융가이자 사상가인 나심 니콜 탈레브는 그의 탁월한 저서 <안티프라질(Antifragile)> 의 첫 장을 이렇게 썼다.

“바람이 불면 촛불은 꺼지지만 모닥불의 불씨는 되살아 난다(Wind extinguishes a candle and energizes fire).”

(번역서의 문장은 “바람은 촛불 하나는 꺼뜨리지만 모닥불은 살린다.” 이지만 ‘바람’ 보다 ‘불’ 이 주어로 적합하다고 판단하여 의역하였음.)

한편, 춘천시를 지역구를 하고 있는 국회의원 김진태는 지난 11월 12일, 광화문에 모인 백만 여 개의 촛불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촛불은 촛불 일 뿐, 결국 바람이 불면 다 꺼지게 되어있다.”

김 의원의 눈에는 백 만 개의 촛불이 서로 아무런 상관도 없는 제각각의 것으로 보였는지 모르나, 그를 제외한 우리 모두는 이 백 만 개의 촛불이 기실은 모닥불, 어쩌면 성난 들불과도 같은 것이며, 바람이 불면 그 불길이 더욱 거세질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무 스스럼 없이 쓰는 속담 중 “모난 돌이 정 맞는다.” 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 또한 돌 하나하나를 서로 상관없는 제각각의 것으로 전제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세상에 이롭게 쓰이는 돌 중에 모가 없는 돌이 어디 있던가? 내 가족의 고향인 제주도의 돌담들은 그 모진 바람에도 서로의 모를 맞대고 묵묵히 세월을 이겨내고 있지 않던가? 인류의 위대한 문화유산이라는 이집트 기자의 피라미드와 중국의 만리장성 또한 어찌 돌의 모가 없이 그 어마어마한 규모를 이루어 낼 수 있었을 것인가?

나는 김진태 의원의 촛불 발언, “모난 돌이 정 맞는다.” 라는 표현은 이 땅의 주인들인 국민 한 사람 한 사람 사이의 끈끈한 연대를 폄훼하고 해체하려는 고약한 시도의 흔적이라고 생각한다. 왜 모가 나면 안된단 말인가? 나의 모와 너의 모가 서로 어깨를 맞대고 기댈 수 있다면 우리는 더욱 큰 가치들을 거뜬히 짊어질 수 있지 않은가? 그러한 우리의 모를 정으로 내리치고 기어이 깎아 내려는 시도를 하는 자들은 과연 누구이며, 거센 민심의 들불을 연약한 촛불의 군집으로 애써 평가절하하는 자들은 과연 누구인가?

“모난 돌이 정 맞는다.” 라는 속담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구글링을 해 보니, 이 속담이 일본의 것으로 소개된 저서를 본 트위터 사용자가 국립국어원에 문의를 한 내용이 있는데, 국립국어원에서도 그 기원을 알기 어렵다고 답하였다. 한편 한국에서는 <분노의 질주> 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Fast & Furious> 시리즈 중 <도쿄 드리프트(Tokyo Draft)> 편에서 일본의 오랜 속담 중에 “튀어나온 못이 정을 맞는다(The nail that sticks out gets hammered).” 라는 표현이 있다는 대사가 나오기도 한다.

이 속담이 동북아 전체에 널리 통용되는 것일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조선에 대한 지배를 합리화하는 과정에서, 또는 군부독재정권이 시민들을 탄압하는 과정에서 이 몹쓸 속담이 한 몫을 단단히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이 문장에 담긴 의도와 우리 사회에서의 쓰임새로 미루어보더라도 충분히 합리적인 추정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선후보 수락연설을 통해 “모난 돌이 정 맞는다.” 라는 변명으로 점철된 우리의 비겁한 역사를 청산해야 한다는 사자후를 토한 바 있다. 나는 김진태 의원의 발언을 듣고 이 연설을 다시 떠올렸다. 하여, 나는 이렇게 말한다. “둥근 돌로 쌓은 담은 허물어진다.”고. “바람이 거세게 불수록 들불 또한 더욱 거세어 진다.”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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