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시와 비즈니스

미슐랭 3스타에 빛나는 최고의 스시 셰프, 오노 지로(小野 二郎) 상을 다룬 다큐멘터리 <Jiro Dream of Sushi> 를 보면 매우 흥미로운 장면이 소개된다. 진행자가 지로 상에게 “셰프가 밥(샤리, 舎利)과 생선 등 재료(네타, )를 말아쥐는 퍼포먼스가 스시 전체의 공정 중에서 과대평가되는 것은 아닙니까?” 라고 다분히 도발적인 질문을 던졌는데, 의외로 지로 상이 환하게 웃으며 “흠… 일리있는 말입니다. 사실 스시의 90%는 이미 내가 손에 쥐기 전에 완성된 상태로 준비되지요.” 라고 답하는 장면이 바로 그것이다.

스시는 한 마디로 음식의 생태계 전체가 하나로 응축된 메타포어 그 자체이다. 지로 상과 같은 최고의 쇼쿠닌(人) 이 빚어내는 극상의 맛은 천의무봉의 경지에 이른 스시 쥐는 솜씨는 물론이거니와 최고의 재료공급상들과 수십년에 걸쳐 쌓아온 돈독한 신뢰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지로 상에게 쌀을 공급하는 생산자는 일본 최고의 특급호텔들의 러브콜을 일언지하에 거절한 바 있는데 그 이유는 단 하나, 쌀을 줘 봐야 호텔의 요리사들이 지로 상만큼 그 쌀을 제대로 다룰 수 없다는 것이었다. 수익의 흐름으로 연결된 공급망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사상누각일 수 있으나 이처럼 확고한 신뢰에 기반한 파트너십은 환경의 변화에도 쉽사리 흔들리지 않으며, 바로 그 이유 덕분에 지로 상과 같은 셰프가 수십년에 걸쳐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는 것이다.

이러한 신뢰관계로 똘똘 뭉친 곳이 바로 긴자(座) 상권과 츠키지(地) 시장이다. 츠키지에 모인 최고의 재료공급상들은 매일 아침 긴자에서 손수 재료를 구입하러 오는 최고의 셰프들을 만난다. 최고의 투자자들과 최고의 엔지니어들이 실리콘 밸리에서 교류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여담이지만, 서울에서 본인의 이름을 걸고 스시야를 운영 중인 일본인 셰프에게 어떤 손님이 “도쿄 출장길에 긴자에 가려고 하는데 맛있는 음식점을 추천해 주세요.” 라고 했더니 그 셰프가 “긴자에서는 어딜 가든 기본적으로 맛있습니다.” 라고 답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긴자에 있는 최고의 레스토랑에서 수련한 요리사가 독립을 할 때에는 스승이 있는 긴자에서 제법 멀리 떨어진 곳에서부터 출발하게 되고, 경륜과 평판을 쌓아감에 따라 점점 긴자에 가깝게 매장을 이전해 가는 것이 불문율이기 때문에 긴자에 입성한 것 자체가 하나의 보증수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긴자의 턱 밑에 츠키지 시장이 위치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우리는 흔히 비즈니스에 있어 구매자, 즉 돈을 지불하는 측이 우월적 지위 – 한국식 표현으로 ‘갑(甲)’ – 에 있다고 본다. 하지만, 돈이라는 것은 기실 교환의 매개이자 가치산정의 척도에 지나지 않는다. 돈을 지불한 기업이나 개인은 반대급부로 그에 상응하는 제품 또는 서비스를 제공받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소비하느냐에 따라 자신이 지불한 금액 이상의 가치와 효용을 누릴 수도 있다. 또한 합당한 댓가를 지불하고 현명하게 소비하면 공급자는 구매자를 존중하게 되고 돈으로 살 수 없는 장기적인 신뢰를 제공할 수도 있다. 특급호텔의 자본력으로도 뚫을 수 없는 지로상과 쌀 생산자 사이의 신뢰가 바로 그런 것이다. 그 신뢰의 가치를 모르고서 ‘내가 돈을 지불하니 내가 곧 왕이다’ 라는 고압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은 비즈니스에 있어 극히 근시안적인 행태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어떻게 소비하느냐에 따라 그 효용이 크게 달라질 수 있는 구매에 있어 이러한 근시안적 행태는 가히 치명적이다. 100 을 주고 50 의 효용 밖에 얻지 못할 수도 있고, 150을 주고 300의 효용을 얻을 수도 있다. 쌀을 어떻게 다뤄야 제대로 밥맛을 낼 수 있을지도 모르면서 싸게 샀다고 좋아해 본들 무슨 소용일까?

최고의 스시가 신뢰와 존중이라는 비옥한 토양을 갖춘 생태계에서 비롯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비즈니스의 원리도 스시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 최고의 결과물을 내고자 한다면 생산자에 대한 신뢰와 존중은 기본이다. ‘돈을 주고 산다’ 라는 개념 대신 ‘가치를 교환한다’ 라는 인식, ‘가성비’라는 영악한 표현 대신 ‘제 값을 치뤘다’ 는 공정한 만족감이 우리나라의 산업 전반에도 널리 확산되었으면 한다. 오마카세 스시 한 끼를 먹든, 대규모의 부품이나 솔루션을 구매하든 그 본질은 언제나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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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responses to “스시와 비즈니스

  • 박정규

    기억하실지 모르지만, 5년전 김태웅과 부산에서 달맞이고개에서 뵈었던 경제학부 ’01학번 후배 박정규라고 합니다. (형민이형 결혼식에서도 언뜻 뵈었던거 같네요) 건너건너서 들어온 블로그에 쓰여진 글속에 담긴 통찰력과 문장의 완성도가 충격적이라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예전에 못알아뵈서 죄송합니다. ㅎ)
    지금은 구글에 계시군요. 다음에 기회될 때 형민이형이나 율열이형이랑 한 번 뵐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올려주세요~

  • AY

    진짜 멋진분이세요!! 한국에 있으시면 안될분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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