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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앞에 불손한 사업자 VS 국민 앞에 불손한 법 – Uber X 서비스 중단에 부쳐

Uber X 가 한국에서 서비스를 중단하였다고 한다. 또한 프리미엄 옵션인 Uber Black 또한 현행법에 따라 그 대상을 제한적으로 운영한다고 Uber 측은 밝혔다. Uber 는 서비스 중단을 알리는 성명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이와 같은 결정은 우버가 한국에서 처해있는 규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강한 의지의 표명이며, 한국의 이용자들과 파트너 운전자들, 그리고 지역사회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하여 결정된 사안입니다.” (문법에 어긋남이 있어 뜻에 맞게 일부 수정함.)

이러한 辯 에 대해 혹자는 서울시 등 규제감독기관, 그리고 대한민국 현행법에 대한 불손한 태도라며 불쾌함을 숨기지 않는가 하면, 혹자는 그동안 편리하게 이용해 왔던 서비스를 규제에 가로막혀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된 것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다. 그야말로 상반된 반응인 셈. 그렇다면 그 ‘현행법’ 이라는 것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제1장. 제1조(목적) 이 법은 여객자동차 운수사업에 관한 질서를 확립하고 여객의 원활한 운송과 여객자동차 운수사업의 종합적인 발달을 도모하여 공공복리를 증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법률의 세부적인 사항까지 따질 깜냥은 못되지만, 나는 Uber X 라는 서비스를 중단시키고, Uber Black 마저 극히 제한적인 형태로 축소시키버련 바로 그 ‘현행법’ 이라는 것의 목적을 보고 의아해 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Uber 가 저 법의 목적에 반하는 서비스인가?

정부(국토교통부)나 지자체가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관련 사업자에 대해 필수불가결한 자격을 요구하고 그에 따라 면허제도를 운영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특정 사업에 대해  면허제도를 운영하는 것은 헌법적 가치인 선택의 자유에 대한 예외적인 사안이라는 것이다. 지난 2000년, 국민 대다수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과외 등 사교육 금지’ 가 위헌 판결을 받은 것 또한 이 조치가 부모의 교육권과 과외 교사의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법리에 따른 결과였다. 나는 택시사업자들의 면허가 승객들이 자유롭게 운송수단을 선택할 자유까지 침해해 가면서 지켜져야 할 가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현행 면허제도를 통해서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의 목적인 운수사업의 종합적인 발달과 공공복리의 증진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Uber 의 서비스에 만족하고 쌍수를 들어 반기는 다수의 승객들이 적지 않음을 볼 때, Uber 와 같은 새로운 서비스들이 오히려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정부(국토교통부)와 서울시는 서비스의 시시비비를 가리는데 집중할 것이 아니라 법률의 제정 취지와 목적, 그리고 무엇보다 국리민복 증진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아야 하지 않을까?

Uber 의 확산에 대해 택시기사들의 생계와 처우를 걱정하는 시선도 많다. 충분히 수긍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현행법률이 과연 대표적인 서민계층인 택시기사들의 처우를 증진시켜 왔는가? 나는 경쟁이 부재한 상태에서 면허제도를 통해 기존사업자들을 보호하는 것은 업주들의 배를 불려줄 뿐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된 두 업종이 바로 이 택시사업, 그리고 폭행사건으로 말미암아 온 국민의 경악을 불러일으킨 어린이집 사업인데, 이 두 사업의 공통점이 바로 사업자의 면허취득기준은 높은 반면 종사자의 자격취득은 상대적으로 쉽다는 것이다. 서울대학교 경제학부의 이준구 교수님께서는 이 문제를 효율임금이론의 관점에서 해석한 바 있는데(효율임금이론의 관점에서 본 어린이집 사건-이준구), 1년 남짓한 교육을 통해 자격을 취득한 보육교사들이 평균 130만원 내외의 월 급여로 매일 10시간 이상의 격무를 소화해야 하기 때문에 보육에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서비스를 기대하기 어렵지 않는가 하는 의견을 피력하신 바 있다. 나는 택시사업에 대해서도 같은 논리를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쉽게 면허를 취득할 수 있고 그 처우는 열악한데 어떻게 좋은 서비스를 기대하겠는가? 그런 반면 기존 택시사업자들의 면허는 Uber 와 같은 새로운 도전자들의 위협으로부터 현행법으로 강력하게 보호받고 있으니 이 얼마나 부조리한 일인가? 다소 격한 표현일지 모르나, Uber 에 대한 택시기사님들의 분노와 적개심 뒤에 숨어서 웃고 있을 사람들은 다름 아닌 택시사업체를 소유하고 운영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인가? 나는 정부(국토교통부)와 서울시가 입법이나 개정을 통해서라도 Uber X 그리고 Uber Black 의 운행을 허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무엇보다도 그 방향이 헌법적 가치인 선택의 자유를 지지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현행법인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의 목적에도 부합한다고 믿는다. 만일 정부(국토교통부)나 서울시가 Uber 의 자격에 일부 미비한 것이 있다고 판단한다면 부분적으로 그 보완을 요구하면 될 일이다. 이마저도 Uber 가 거부한다면 그들에게도 더 이상 명분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로 인한 피해가 예상되는 택시사업자, 그리고 수많은 택시기사들에 대해서는 어떤 조치가 필요할까?

솔직히 말해 나는 Uber 의 진출이 택시사업자들의 매출과 이익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에 대한 강한 의구심을 갖고 있다. 서울의 택시들이 승차거부를 해 가며 승객들을 입맛대로 골라태운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런 단편적인 현상만으로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나는 승객의 한 사람으로써 지난 십 수년 간의 경험을 돌이켜 볼 때, 서울의 택시 서비스가 공급과잉의 상태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편 Uber 의 차량 운행대수는 얼마나 될까? 이 data 가 궁금했지만 검색만으로는 찾을 수가 없었는데 평소 내가 Uber 를 이용할 때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Map 위에 등장하는 차량의 댓수는 언제나 열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의 것이었다. 내 짐작으로 Uber 의 시장점유율은 백분율로 볼 때 소수점 단위 정도가 아닐까 싶다. 다른 시장으로 잠시 시선을 옮겨, 최근 수입맥주가 시장에서 대단한 위세를 떨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대부분의 보도자료를 보면 대형마트에서의 수입맥주 점유율이 30% 대에 육박하고 있다는 내용이며 전체 시장에서의 점유율은 아직 한 자리 수에 그치고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대형마트보다 훨씬 큰 요식업체 시장에서 여전히 국산맥주들이 압도적인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인데 우리는 이처럼 같은 제품군 안에서도 다양한 시장이 존재할 수 있음을 종종 망각하곤 한다. 나는 Uber 정도의 서비스가 서울과 같은 Megacity 에 들어온다고 해서 단기간에 기존 택시업계를 고사시킬 정도의 충격을 줄 것이라곤 믿지 않는다. 또한 Uber 와 같은 새로운 서비스의 충격을 받고서도 기존 택시업계가 스스로를 혁신하지 못한다면 장기적으로 시장에서 퇴출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Uber 의 어마어마한 시장가치 등을 내세워서 마치 이 회사가 기존 택시업계를 고사시킬 수 있는 공룡기업이라도 되는 양 묘사하는 기사와 글들에 강한 거부감이 드는 이유이다.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예측도 없이 택시업계의 피해를 보전해 주자는 비생산적 논의 따위는 없어야 한다. 그보다는 기존 택시사업자들에 대한 보다 엄격한 평가를 통해 시장 진입과 퇴출을 용이하게 할 필요가 있다. Uber 가 보여주지 않았는가? 사용자들로부터의 직접적인 평가가 얼마나 쉽고 편리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지를. 그 대신 택시기사들의 처우를 대폭 개선시키는 한편 그 자격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효율임금이론이 만능은 아니지만, 적어도 작금의 처우로는 택시기사들에게 좋은 서비스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내 생각이며, 개선된 처우와 함께 그에 걸맞는 자격을 요구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London 의 명물로 유명한 Black Cab 의 Driver 가 되기 위해서는 London 곳곳의 도로 정보를 손바닥 들여다 보듯 해야한다고 한다. 나는 내가 탄 택시의 기사님께서 목적지까지 가장 빠른 경로로 숙련된 운전 실력을 발휘해서 친절하게 운행해 주신다면 지금보다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할 용의가 있다. 정말이지 택시비를 낼 때마다 내가 왜 내 스마트폰의 네비게이션을 검색해서 직접 길을 설명하고, 욕설을 들어가며 급발진 급정거로 인한 차멀미를 경험해야 하는지 납득이 가질 않는다. (극단적인 사례가 아니다. 나는 업무상 택시를 탈 일이 많은데 열 번 타면 예닐곱 번은 저런 경험을 하곤 한다. 지인들의 반응도 마찬가지이다.) Uber X 를 타면 더 저렴한 요금으로도 그런 끔찍한 경험을 하지 않을 수 있는데 말이다.

법은 사회적인 합의, 그 중에서도 강력한 구속력을 지닌 합의이고 그 사회의 구성원이라면 개인적인 호불호를 떠나서 우선적으로 그 합의를 준수할 의무가 있다는 데 이견은 없다. 다만, 그 법이란 것을 만고불변의 진리로 생각할 하등의 이유는 없으며, 그 제정 취지와 목적에 비추어 볼 때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면 정부와 관계 기관이 나서서 발빠르게 대응하는 것이 국민을 위한 의무를 다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Uber X 서비스 중단에 즈음한 나의 바램은 법 앞에 불손한 사업자를 징벌하는 것에 앞서 국민에게 불편을 안겨주는 법률을 손보는 일이 먼저 이루어졌으면 하는 것이다. 소박한 바램이다.


Antifragile, Nassim N. Tal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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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작 <The Black Swan> 에 대하여

<The Black Swan> 을 기억하는가? Darren Aronofsky 가 메가폰을 잡고 Natalie Portman 에게 오스카를 안겨 준 2010년 개봉 영화를 먼저 떠올렸다면, 당신에게 Nassim N. Teleb 이 쓴 <The Black Swan> 의 일독을 권한다. 영화에서의 ‘Black Swan’ 은 ‘White Swan’ 과 함께 인간의 양면성 혹은 선과 악의 대비를 은유하지만, Taleb 의 저작에서 ‘검은 백조’는 사뭇 다른 의미를 갖는다.  요컨대, 직접 경험한 바가 없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사건이 실제로 발견되거나 일어남으로써 세상에 큰 충격을 미치는 것을 곧 ‘검은 백조’ 또는 ‘검은 백조 현상’ 이라고 하는데 – ‘Swan’ 은 우리 말로 ‘고니’ 라 하며, 하얀 색의 단일종으로만 알려져 있다가 1790년, 호주에서 영국의 John Ratham에 의해 처음으로 검은 색 ‘Swan’ 의 존재가 학계에 보고되었다. – 월가의 파생상품 트레이더였던 저자를 시대의 현자 반열에 올려 놓은 것은 그가 2007년에 <The Black Swan> 을 발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2008년 소위 ‘Lehman Brothers 사태’ 로 불리는 금융 위기가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과격분자의 비관론으로 치부되던 그의 주장이 현실로 드러나자 언론과 학계는 앞다투어 그의 이론을 재조명하게 되었고, <The Black Swan> 은 과거의 경험으로는 결코 예측할 수 없는 극단적 사건들이 한 사회는 물론 개인의 미시적 삶에 이르기까지 치명적 영향을 미치게 된 냉엄한 시대의 현실을 상징하는 표현이 되었다.

 ‘antifragile’ 의 의미

<The Black Swan> 을 통해 세상을 움직이는 동인에 대해 일갈했던 저자는, 이러한 ‘극단의 왕국’ 에서 어떻게 살아나가야 할 지에 대한 혜안을 <Antifragile> 이라는 후속작을 통해 제시함으로써 사상가로서의 책임을 다하고 있다. 저자 스스로도 ‘<The Black Swan> 은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을 납득시키기 위해 쓴 책이며, 실천을 위한 <Antifragile> 의 보조도서’ 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우선 ‘antifragile’ 이라는 생경한 단어의 의미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바람이 불면 촛불은 꺼지지만 모닥불의 불씨는 되살아 난다.”

(번역서의 문장은 “바람은 촛불 하나는 꺼뜨리지만 모닥불은 살린다.” 이지만 ‘바람’ 보다 ‘불’ 이 주어로 적합하다고 판단하여 의역하였음.)

이것이 이 책의 첫 문장인데, 사실 이 문장 하나에 이 책의 모든 메세지가 함축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700쪽(한글 번역서 기준)이 넘는 분량의 사상과 지식을 단 한 줄의 문장에 담아낼 수 있는 그 간결함과 명료함이야 말로 이 책의 미덕이라고 할 수 있다.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충격(바람)이 닥쳤을 때, 쓰러지는 존재(촛불)가 있는가 하면 더 강해지는 존재(모닥불)이 있고, 어떤 충격이 닥칠지 함부로 예단하려는 우를 범하기 보다는 충격을 받아들여 오히려 강해질 수 있는 존재가 되라는 것. 그것이 이 책의 메세지이다. (주지하다시피 ‘fragile’ 이라는 단어는 ‘부서지기 쉬운’ 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데 사전에는 ‘durable’ 을 포함하여 ‘내구성이 강한’ 또는 ‘충격에 잘 견디는’ 과 같은 뜻을 담은 단어들이 반의어로 언급되어 있다. 저자는 이런 정의에 의문을 제기하며, ‘충격을 받을 수록 더욱 강해지는’ 이라는 뜻이야말로 ‘fragile’ 의 진정한 반의어가 되어야 하고, 따라서 ‘antifragile’ 이라는 새로운 단어를 제안한다고 하였다. 어찌 보면 이 ‘antifragile’ 이라는 단어 자체도 그동안 개념적으로 존재했지만 단어로 표현되지 못했던 ‘검은 백조’ 중 하나가 아닐까?)

 ‘antifragile’ 의 사례

이제 이 ‘antifragile’ 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쓸모를 갖는지 저자가 언급한 사례를 통해 살펴 보기로 하겠다. 먼저 그리스 신화로 눈을 돌려 보자면, 시칠리아의 참주 디오니시우스 2세가 아첨을 일삼는 다모클레스를 연회에 초대해 놓고서는 천장에 말총 한 올로 매달아 놓은 칼 밑에 앉게 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데, 약간의 충격에도 말총이 끊어져 목숨을 잃게 될 수 있는 다모클레스의 처지가 곧 ‘fragile’ 하다고 할 수 있다. 반면, 레르나 호수에는 뱀과 같이 생긴 머리를 여러 개 가진 히드라가 살고 있는데, 이 히드라의 머리를 하나 잘라내면 두 개가 자라났다고 한다. 해를 입으면 오히려 더 강해지는 히드라야 말로 ‘antifragile’ 의 상징과도 같다고 할 수 있다. 시계바늘을 한참 돌려 21세기 비즈니스의 세계로 옮겨 가 보자면, 약간의 충격이 삽시간에 시스템 전체로 전이되어 위기에 빠질 수 있는 월스트리트는 ‘fragile’ 이 지배하는 영역이라 할 수 있고, 반대로 불확실성이 혁신을 촉진하는 실리콘밸리야 말로 ‘antifragile’ 의 천국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Apple 에서 쫓겨난 Steve Jobs 가 Next 와 Pixar 에서 이루어 낸 혁신을 포함하여 수많은 Startup 들이 어제의 실패에 굴하지 않고 더 큰 성공을 일구어 가는 밸리의 생명력이 곧 ‘antifragile’ 그 자체이다.

 ‘극단의 왕국’ 에서 살아남기 위한 ‘Barbel’ 전략

저자는 상승국면과 하강국면의 비대칭성을 이해하고 상승국면으로부터의 이익을 극대화 하기 위한 방안으로서 세네카로부터 영감을 받은 ‘Barbel’ 전략을 제안한다. 이는 쉽게 말해, 바벨의 한 쪽 끝에서는 제거해야 할 리스크를 극단적으로 혐오하고, 반대 끝에서는 취해야 할 리스크를 적극적으로 끌어안는 전략을 말한다. 현대의 직업인들의 삶에 초점을 맞추어 보자면, 기업 등에 소속되어 급여소득자로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는 것은 ‘Barbel’ 전략에 반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왜냐하면 예측하지 못한 사건 – 이를테면 갑작스러운 경제 위기 등 – 에 의한 실직이라는 최악의 리스크를 피할 수 없고, 반대로 급여소득의 일부를 재투자 하는 것 말고는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기회 또한 갖기 어렵기 때문이다. 저자는 외교관으로 일하면서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작을 남긴 스탕달이나 국영 보험회사에 일하면서 자신만의 소설 세계를 구축한 카프카를 예로 들면서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직장을 기반으로 자신의 꿈을 실현해 나간 선각자들을 ‘Barbel’ 전략의 진정한 주인으로 칭송하고 있다. 개인적인 경험을 덧붙이자면, SK텔레콤과 SK플래닛에서 일하는 동안 훌륭한 사내 강연에 참석할 기회가 많았는데 이 때 만나 뵌 연사 분들 중 상당 수가 ‘Barbel’ 전략의 실천자들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을 꼽자면, 정신과 의사이면서 오페라를 비롯한 클래식 문화의 Evangelist 로 활동 중이신 풍월당 박종호 대표님을 들 수 있는데, 의사라는 직업을 기저에 두고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클래식을 통해 자아를 실현해 나가는 모습이 무척 인상 깊었다. 이런 분들의 스토리가 널리 알려지고 평생 직장이 희박해져 감에 따라 제 2의 인생을 설계하시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이것이 곧 불확실성의 증대에 따라 ‘Barbel’ 전략이 자연스럽게 확산되는 한 단면이 아닌가 싶다.

 ‘antifragile’ 의 윤리학

개인의 삶에 있어서 ‘Barbel’ 전략을 통해 ‘antifragile’ 을 추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런 시도들이 모여 사회적으로 善을 추구할 수 있다는 저자의 주장에 나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 저자는 우리가 리스크를 감내하는 집단과 그 리스크를 감내한 결과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을 취하는 집단이 상이한 사상 초유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일갈한다. 2010년 아카데미 최우수 다큐멘터리에 빛나는 <Inside Job> 에서 고발한 바와 같이 ‘Lehman Brothers’ 사태에도 불구하고 이 엄청난 재앙을 초래한 세계 금융권의 인사들은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기는 커녕 그들만의 카르텔 속에서 천문학적인 이익을 취한 바 있다. 2008년의 금융위기에 단단히 한 몫한 AIG 가 CDS(Credit Default Swap) 라는 파생상품을 팔아 엄청난 수익을 올리는 동안 그 직원들은 $3.5B, 한화로 약 3조 7천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단기 보너스로 받았고 이 상품의 책임자 중 한 명인 Joseph Cassano 라는 사람은 혼자서 $315M, 한화로 약 3,320억원을 챙긴 바 있다. 결국 CDS 를 유동화한 CDO(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 에 문제가 생기고 거품이 터지자 그 피해는 고스란히 투자자들에게 돌아갔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AIG 의 임직원들이 챙긴 보너스에는 아무 문제도 생기지 않았다. 이것은 결국 월가의 금융권은 ‘antifragile’ 한 반면, 투자자들은 ‘fragile’ 한 입장에 처할 수 밖에 없도록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었기 때문이고, 이런 시스템이 개혁되지 않는 한 제 2, 제 3의 ‘Lehman Brothers’ 사태는 또 다시 ‘검은 백조’ 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 것이다. 따라서, ‘antifragile’ 과 ‘Barbel’ 전략이 소수의 전유물이 되어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키지 않도록 우리 모두가 이 개념과 전략을 적극적으로 채택하고 실천할 필요가 있다. 아니, 꼭 그래야만 한다. (특히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함으로써 시스템을 만들어 가는 정치인, 행정가들은 반드시 저자가 주장하는 프레임을 새겨두어야 할 것이고, 시민들은 투표를 포함한 정치적 의사표현을 통해 이들을 평가하고 심판해야 할 것이다. 더불어 경영진의 고액 연봉과 관련하여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이준구 교수님의 시론을 권해 드리는 바이다.)

인식의 전환, Via Negativa vs. Via Positiva

이제 제 2의 ‘Lehman Brothers’ 사태를 막기 위해 저자가 제시하는 사고와 논증의 방법을 살펴 볼 차례이다. 소설가이자 철학자인 Umberto Eco 는 약 3만권의 장서를 갖춘 큰 서재를 가진 것으로 유명한데, 이 서재를 방문하는 사람을 두 부류로 구분한다고 한다. 그 중 다수는 Eco가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는지 궁금해 하는 부류이고, 그에 비해 소수인 부류는 서재를 앞으로 탐구할 서적들로 가득 찬 미지의 공간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라 한다. 후자의 인식을 ‘Eco의 반서재(Anti-library)’ 라고 하는데 ‘antifragile’ 과 같은 맥락으로 도출된 단어라고 보면 크게 무리가 없을 것 같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Antifragile> 의 백미는 바로 이 ‘서재에서 반서재로 인식의 전환’을 경험할 수 있는 제 6권 ‘Via Negativa’ 라고 믿는다.

우리는 은연 중에 우리가 살고 있는 최첨단의 현대가 세상의 모든 진리와 비밀을 꿰뚫고 있다고 믿고 있다. ‘검은 백조’ 따위는 이미 18세기에 정복된 일이고, 바로 어제 뉴스에 보도된 과학 기사가 영구불변의 진리인양 믿으며, 오늘 소셜미디어에서 본 다이어트 식단과 운동법을 곧바로 실천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과연 그런 첨단의 발견과 소식들은 충분히 검증된 진리인가? 그리고 그 진리의 이면에 다른 가능성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 있는가? 저자는 이렇게 살얼음 얼어붙은 인식의 수면에 ‘Via Negativa’ 라는 묵직한 돌덩어리로 균열과 파문을 일으킨다. ‘Via Negativa’ 란 어떤 명제가 옳다는 것을 연역적으로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명제가 참이 아니라는 반증들을 차례로 제거해 나감으로써 진리의 요체와 핵심을 분명히 드러내는 과정을 뜻한다. (즉, ‘Via Positiva’ 가 찰흙을 덧발라 조각을 완성해 가는 과정이라면, ‘Via Negativa’ 는 거꾸로 소재를 깎아가면서 완성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특히 의학의 측면에서 이 ‘Via Negativa’ 의 적용을 강력히 촉구하고 있는데, 현대의 의학이 어떤 한 증상을 완화시키는데 큰 효과가 있다고 해서 우리 몸의 체계 전반에 미칠 다른 영향을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는 행태에 대해 강력한 비판을 던지고 있다. 심각하지 않은 질병에 대하여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과잉 처방과 진료를 지양하고 생명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경우에 한하여 첨단 의학을 적용할 것을 촉구하고 있으며, 이것이 의료보험의 실효성을 높이는 데도 기여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과잉진료 논쟁이 끊이지 않는 우리나라도 이런 저자의 주장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을텐데, 라식을 비롯한 시력교정술을 한 예로 들어볼 수 있겠다. 이런 획기적인 시력교정술이 본격적으로 도입된 지 불과 한 세대가 채 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연간 10만 건 이상의 시력교정술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관련기사), 문제는 이러한 수술 또는 시술의 효과가 시간의 경과에 따라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는 누구도 단정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혈압이나 콜레스레롤 수치가 높아지는 경우에도 그 뿌리를 찾아 해결하려는 ‘Via Negativa’ 적 접근 없이 단정적으로 혈압약 또는 콜레스테롤 저하제를 처방하는 ‘Via Positiva’ 적 접근이 의학계에 널리 퍼져있으며, 그 처방의 과학적, 의학적 근거에도 불구하고 그 이면의 가능성에 대한 의문을 우리는 당당히 던질 수 있어야 한다.

‘Via Negativa’ 의 아름다움, 그리고 영화 <최종병기, 활>

Steve Jobs 와 Apple 은 ‘Less is more’ 라는 철학을 통해 더하는 것보다 덜어내는 것의 중요성, 그리고 핵심만을 남긴 아름다움을 탁월한 제품으로 표현한 바 있다. ‘Via Negativa’ 를 통해 진실을 드러내고 동시에 ‘antifragile’ 을 획득하는 것. 이것은 세상과 삶을 마주하는 시선과 태도에 다름 아니며, 이를 통해 단편적인 사실에 의존한 위태롭고 ‘fragile’ 한 삶에서 벗어나 보다 아름답고 풍요로운 삶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삶의 당당한 주인공이 될 수 있다. 결국 이 <Antifragile> 이라는 방대한 지적 성취물은 개인의 자유와 삶의 주체성을 되찾는 여정이 아닐런지. 그래서인지 나는 이 <Antifragile> 의 마지막 장을 덮자마자 Nikos Kazantzakis 의 <Zorba, The Greek> 를 떠올렸고, 그 느낌을 저자인 Nassim N. Taleb 에게 twitter 를 통해 전달한 바 있는데, 영광스럽게도 Taleb 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회신을 얻을 수 있었다.

To  I’m your huge fan in Korea. On <Antifragile>, I felt that ‘Zorba The Greek’ was the icon of Antifragilistas. What’s your idea?

To  Indeed!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 문득 내 머리 속에 스쳐가는 영화의 한 장면이 있으니 바로 <최종병기, 활> 의 마지막 장면이 그것이다.

<최종병기, 활> 마지막 장면 YouTube 바로가기 (Click Here)

 “두려움은 직시하면 그 뿐. 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다.” – 남이(박해일 扮)

Nassim N. Taleb 이 본다면 아주 기뻐할 대사가 아닐까 싶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께 <Antifragile> 의 일독을 권하며 긴 글의 끝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