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0일, ‘Think 2014 with Google’ 이 1,000 명에 가까운 참석자들을 모신 가운데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이 컨퍼런스는 디지털 마케팅 생태계의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함께 모여 각자의 생각과 경험을 공유하는 場이라고 할 수 있는데, 특히 매년 최고의 Creative Director(이하 ‘CD’) 를 Keynote 연사로 모시고 있으며 지난 해 박웅현 TBWA Executive Creative Director(이하 ‘ECD’) 의 뒤를 이어 올해는 김정아 이노션 월드와이드 ECD 께서 자리를 빛내 주셨다. 나는 올해 이 컨퍼런스의 사회를 맡아 이 분을 직접 소개하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고, 이 날의 스피치 첫 부분을 소개하는 것으로 글을 시작하려 한다. (기억에 의존하는 것이라 표현을 정확하게 옮기지 못하는 점, 글을 읽으시는 분들께 널리 양해를 구한다.)
“누군가의 마음을 얻어서 연인이 되고 싶어 하는 한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그 사람이 ‘난 이 사람과 한 달에 10번의 데이트를 하고, 30번 손을 잡으며, 이 사람이 나를 사랑한다고 50번 외치게 하고야 말겠어.’ 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이 사람을 어떻게 생각할까요?”
눈치가 빠른 분이라면 아마 김정아 ECD 가 무엇을 이야기하려 하는지 금새 알아채셨을 것이다. 10번의 데이트, 30번의 스킨십, 그리고 50번의 외침은 곧 조회 수, ‘좋아요’, ‘공유하기’ 같은 소위 디지털 마케팅의 KPI 에 대한 은유이다. 마케팅 혹은 브랜딩이라는 것은 결국 고객의 사랑을 얻기 위한 활동인데, 우리는 어쩌면 사랑의 본질 그 자체는 도외시 한 채 그 흔적의 정량적 수치에 함몰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날카롭게 일갈하는 메세지였다. 과연 당대 최고의 CD 다운 면모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KPI 가 무엇인가? Wikipedia 에 따르면, ‘A performance indicator or key performance indicator (KPI) is a type of performance measurement. An organization may use KPIs to evaluate its success, or to evaluate the success of a particular activity in which it is engaged.’ 라고 기술되어 있다. 이 정의에서도 알 수 있듯이, KPI 란 성공 또는 성공과 연관된 특정한 활동의 성공을 평가하고 측정하는 ‘지표’이며, 성공 혹은 실패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다. 김정아 ECD 의 날카로운 은유로 돌아가 보자. 누군가의 마음을 얻어 그 사람과 사랑에 빠진다면 손을 잡고 데이트를 하며 사랑을 외치게 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결과가 될 것이다. 하지만, 상대방의 마음을 얻는 것보다 데이트와 스킨십의 횟수에 집착한다면 사랑은 커녕 혐오와 거부감만 불러일으킬 뿐이라는 것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평범한 진리이다. 그럼 이제 불편한 질문을 던져 보자. KPI 를 쫓아 하루하루 살아가는 우리는 고객에게 집착하는 스토커인가?
CJ의 도준웅 CDO(Chief Digital Officer) 가 쓴 <디지털 시대 새로운 마케팅의 탄생, COD> 를 보면 이 스토킹에 대한 증거를 확인할 수 있다.
“최근 페이스북에서 주최한 세미나에 참석한 적이 있는데, 묘한 이야기를 들었다. “한국 소비자들이 미국 페이스북 유저에 비해 168% 나 댓글을 더 달고 있다”는 발표였다. 이에 대해 “한국 소비자들의 반응과 상호작용(Interaction)이 더 활발하다” 고 해석하는 것을 듣고 어이없는 웃음을 지은 적이 있다. 우리나라 페이스북 유저가 미국 유저에 비해 댓글을 많이 다는 중요한 이유는 기업들이 페이스북을 운영하면서 ‘댓글 달기 이벤트’ 를 많이 벌이기 때문이다.” – 도준웅 저, <디지털 시대 새로운 마케팅의 탄생, COD> 중 발췌.
나 역시 몇몇 관심있는 브랜드의 소셜 계정들을 ‘follow’ 또는 ‘like’ 하고 있지만, 매일 아침 출근길 마다 이 계정들이 보내오는 메세지에 아연실색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기업의 소셜 계정이 도대체 왜 고객들에게 “오늘 점심은 자장면이 좋을까요, 짬뽕이 좋을까요?” 라는 걸 물어보고 댓글을 달게 하며 게다가 그 중 일부에게는 커피 상품권을 증정하기까지 하는걸까? 이 기업은 중식과 관련된 비즈니스를 하지 않는데도 말이다. 이처럼 시시콜콜한 질문과 시시콜콜한 경품으로 시시콜콜한 댓글을 유도하는 행태가 타임라인과 뉴스피드를 가득 메우고 있다. 이렇게 해서 수많은 댓글과 ‘좋아요’ 을 얻었다고 치자. 그것이 과연 고객의 관심과 사랑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을까? 한정된 예산으로 KPI 를 달성했으니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더 이상 이글을 읽을 필요가 없겠다.
한겨레 신문의 보도를 통해서 ‘영혼없는 KPI’ 의 실례를 확인할 수 있는데, 실제 영국에서 제작된 만화영화 <미스터 빌리 : 하일랜드의 수호자>는 세계적으로 한국에서만 개봉되고 흥행에 참패했지만, 페이스북 ‘좋아요’는 6만5000개로 웬만한 할리우드 영화보다 많았을 뿐 아니라 ‘좋아요’ 클릭은 개봉도 되지 않은 이집트와 방글라데시에서 압도적으로 많이 이뤄졌다고 한다. 이런 아연실색할 일들은 방글라데시와 같은 저임금 국가의 ‘클릭 공장(Click Farm)’ 을 통해 벌어지는데, 영국 Channel 4 의 탐사 보도 프로그램인 ‘Dispatches’ (한국의 연예 보도 매체인 ‘디스패치’ 와 이름이 같다) 에서는 ‘Wrong Direction’ 이라는 이름의 가짜 보이밴드를 만들고 이들을 홍보하는 과정을 통해 Click Farm 의 실태를 고발한 바 있다.
Dispatches : Celebs, Brands and Fake Fans (YouTube 영상 바로가기)
KPI 의 존재의미를 부인하고 싶지는 않다. 특히 성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그에 따라 보상하는 것은 연애와 달리 비즈니스에 있어 매우 중요한 과정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경영자가 별을 보지 못하고 별을 가리키는 손가락 끝만 바라본다면 기업은 매우 심각한 위험에 빠지게 된다. 어느 기업이 디지털 마케팅에 있어 각종 KPI 등을 달성하기 위해 온갖 이벤트를 벌이고 경품을 내걸며 기껏해야 체리피커에 지나지 않을 사람들로부터 환심을 샀을 수 있다. 그런데 KPI 로 확인된 수치에도 불구하고 이 기업의 비즈니스는 전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을 경우, 경영자는 그 KPI의 이면을 뜯어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KPI 의 Goal 이 너무 낮게 설정된 것이 아니냐며 더 과도한 목표를 부여하게 된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어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도저히 달성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면 실무자들은 Click Farm 과 같은 부정한 방법을 통해 기업의 소중한 자원을 영혼없는 KPI 와 맞바꾸기에 이른다. 이쯤되면 그 기업의 커뮤니케이션은 회복불능의 상태로 치닫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Click Farm 이 먼 나라의 일이고, 너무나 극단적인 예시라고 생각한다면 작금에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례를 언급해 보겠다. 최근에 나는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통해서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스크린샷을 수 차례 목격했는데, 본문의 내용만 옮기자면 다음과 같다.
“안녕하세요? 저희 업체는 블로그 마케팅을 하는 회사입니다. 마케팅 용도로 블로그를 구매하고 있는데요. 혹시 블로그 판매 의사가 있으신가요? 괜찮으시다면 저희 회사에서 00 만원에 블로그를 아이디까지 함께 구매하고 싶습니다. (중략) 매입 대상 블로그는 글 수=40개 이상(스크랩글은 제외입니다.) 운영한 지 한 달 반 이상입니다.”
이것이 현실이다. 저런 얼치기 사기꾼 같은 업체가 횡행하고 있는 이면에 얼마나 많은 수요자들이 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제안이 오가는 자체가 이미 시장의 존재를 증거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인터넷 강국이라는 대한민국의 힘이 저런 말도 안되는 일에 쓰이지 않기를, 그리고 디지털 마케팅 업계에 종사하는 많은 분들의 상식이 온전히 살아 숨쉬기를 바랄 따름이다.
단언컨대, 브랜딩과 커뮤니케이션은 ‘6 Sigma’ 라는 이름으로 불량률 제로에 도전하는 생산공정처럼 관리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브랜딩과 커뮤니케이션은 고객과의 상호작용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거듭 김정아 ECD 의 레토릭을 빌게 되지만, ‘영혼없는 KPI’ 로부터 눈을 돌리고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얻듯 세심하게 살피고 진심으로 이야기 해야한다. 물론 이것이 어려운 일임을 잘 안다. 그리고 가장 큰 장벽은 다름아닌 광고주 기업의 최고 의사결정권자에서부터 광고부서를 거쳐 에이전시에까지 이르는 긴 preocess line 의 존재라고 생각하는데, 위에서 아래로 잘게 쪼개진 KPI 를 전달할 것이 아니라 하나의 목표, 즉 고객의 마음을 얻기 위해 line 구성원 전체가 집중하지 않는다면 ‘영혼없는 KPI’ 에 브랜드의 영혼을 팔게 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결코 끊을 수 없을 것이다. 환언컨대, 확고한 철학을 갖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자 하는 선한 기업에게 희망을 걸 수 밖에 없겠다.
현실은 어둡고 절망적이지만, 결국은 옳은 길을 가게 될 것이라는 암시를 담은 라틴어 문구로 글을 맺는다.
Quo Vadis, KPI !!



